술주정/기억

군생활의 기억 중에서... 03

주정뱅이 2026. 1. 9. 12:23


이것은 내 군생활에 대한 기억..
그 세 번째 글이다..



내가 군대에 왔을 때는..
아직 계급별 생활관이 생기기 조금 전으로서...

그것과 살짝 비슷한 느낌의 계급별 간담회가..
주 1회 정도 꾸준히 열렸었는데..

​같은 계급끼리 허울 없이 고충 상담을 하라고 마련된 이 자리는..

수많은 내부 고발자와...
'군대에선 쓸데없는 의견을 내면 모두가 힘들어지는 거야'
라는 선임들의 으름장에 의해...

양들의 침묵? 소리 없는 아우성?

어쨌거나 그런 느낌으로..
다들 할 말은 많았으나 젠-틀하게 조용히 있는 시간...
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괜히 영웅이 되려고 했다가
천하의 개새끼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매장당하게 되는 것을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청소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처음으로 걸레질을 하던 날
유 일병은 나에게 걸래 빠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이 방법이 통상적으로 알던 방법과 다소 달랐다

군대에선 걸래를 치약물에 빤다..

손에 치약을 짠 후에 소량의 물과 반죽하여?
거품이 나기 쉬운 상태로 만들고 물에 풀어준 후
거기에 걸래를 넣고 쥐어짜 헹구는 것..?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걸래를 꽉 붙잡은 다음..
발도술을 쓰듯이 밀어 당겨 물기를 짜 낸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것은 군대 밖에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식의 걸래 짜는 법이었다..

그렇게 치약으로 빨은 걸래를..
아주 딴딴하게 돌려말아 후랑크 소시지처럼 만든 후..
침상을 내리눌러 밀어 짜듯이 먼지를 털며 닦아내는 것...인데..
침상이 제법 긴 데다가 양쪽에 두 개가 있어서 힘이 들었다..

그리고.. 이 내무실의 신병은 나 하나였기에
김일병과 유일병은... 걸레질에서 해방될 수 없었다..



그렇게 주특기와... 걷기와.. 청소와 함께한..
1년 같은 1달이 지나가고..

드디어 첫 후임이 들어왔다...

​이 녀석은 선우이름을 가진 이 이병..이라는 녀석으로서..
살짝 빈라덴처럼 생겼다..

나는 그래도 한 달 먼저 온 선임으로서..
그동안 습득한 지-식을 후임에게 알려주고 싶었으나...

나의 배움은 얕았고..  이 이병은..
게임 이야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자였다..

​안 그래도 입대하기 전에..
마비노기라는 오덕게임에 미쳐있던 나는..
모든 것을 마비노기처럼 생각하며 힘듦을 버티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로 이어지며..
그러다 사고를 낼지도 모르기 때문에..
억제하려 애 썼는데..

​이 녀석이 이렇게 억제 없이 게임 이야기에 불을 올리니..
나 역시 참을 수 없게 된 것..

으으..
원통하도다...

​구차하고 비겁한 변명이라 여겨도 좋다..

나는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선우가 관측반에 온 이후 나의 군생활은....
그래도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선우는 게임 이야기를 몹시 좋아하는 녀석이었고..

​그것은..
그래도 한 달 먼저 왔다고... 정신 차리고 일과에 집중하려던.. 나의 억제와 노력을..
한방에 무너트리는 일이 되었는데..

​처음으로 단 둘이 작업에 배치받았을 때의 대화를 떠올려보자..

​나: '게임 이야기 그만하고 작업에 열중하자'
이 이병 : '안 됩니다 저랑 게임 이야기 하셔야 합니다'
나: 게임 이야기만 해서 언제 끝낼 건데?
이 이병: 에~이~ 이거 우리가 오늘 하루 종일 해도 못 끝냅-니다~!

엇어.. 이게 아닌데..?

내가 그동안 해오던 선임들에 대한 복종과 믿음은 무엇이였던가?
아무리 한 달 후임이라지만 이렇게 쉽게 지시에 불복하고 하극상적 행동을 한다고?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대화가 몇 번 있었으나..
나는 결국 이 이병의 군대에서 자제하여야 할..
과도한 자유의지를 꺾지 못했고..

​나 혼자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이 이병과 함께 협동하여 클리어하고 싶은 나의 바램은..
번번이 무너졌다

그렇게 우리는 무능력자로 낙인이 찍혀..
항상 별것 아닌 것에도 세트로 혼났고
기억할 수도 없이 많은 반성문을 작성해야 했다..

나의 자괴감과 슬픔에 젖은 반성문을 본 선임 분대장님들은..

대대로 말하길
'방디 이 녀석 반성문 읽어보니..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네.. 읽다가 눈물이 날 뻔했다'
...라고 감상을 말 하였다..



그렇지.. 뭘 잘못했는지는 기똥차게 잘 알고 있지...

그런데 반성문에서만 바른말을 할 뿐..
현실이 그렇게 지켜지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나 자신조차도 감당이 안 되는데...
그런 주제에.. 겨우 한 달 후임인 이 이병을 이끌기엔..
난 너무나도 부족한자 였으니까.....

이 이병에 대한 첫인상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 이병이 들어오고 몇 주 지나지 않아..
나의 첫 분대장이셨던 이 병장은 전역을 하셨다..

전역하시면서 나에게...
' 빵디! 난 널 잊지 못할 거야! 넌 특이한 놈 이였잖아!' 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그동안 날 챙겨주었던 것에 대해 감사함을 담아..
이렇게 대답해 드렸다...

'저도 저의 첫 분대장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 병장의 전역이 화젯거리에서 사라질 즈음이었다...

누구나 이 우스갯소리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군대에선 속옷을 서로 훔쳐 입는다!'

... 일단 말해두지만
나는 남의 속옷을 훔쳐 입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대체 어떤 지저분한 놈이 입던 건 줄 알고..
훔쳐 입는단 말이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우리 부대의 세탁기는 총 2대로서...
세탁 및 탈수.. 건조까지 되는 하이브리드 세탁기로써..
모두가 사용하는 데 있어 제한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순번을 기다리다가..
내 순서가 왔을 때 빨래를 넣고 돌리면?
30분쯤 뒤엔 뽀송뽀송 깨끗해진 빨래를 회수할 수 있는 것..

문제가 있다면.. 이거 코인 세탁기다..
돌리려면 500원짜리 동전이 필요했다...

100원도 50원도 10원도 먹지 않고 오로지 500원..

그런데.. 이등병 찌꺼기에게..
동전이 그렇게 충분히 있을 수가 있을까..?

​아니 그럴 리가....
수급을 할 곳이 전혀 없는데...?

​ATM 기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휴대폰 따위도 못 쓰던 시절이라...
돈이 없는 우리 이등병들은..
자연스럽게 손빨래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손빨래를 해서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놓으면..
빨래가 귀신같이 사라진다!

대략 60%의 확률로..?
누군가 훔쳐간다..?

놀라워!
너는 도둑질을 잘하는 프렌즈구나!

나는 신교대에서 5세트의 군용 속옷을 지급받았는데..
손빨래를 할 때마다 조금씩 줄어든 속옷은
짝짝이가 되었다가..

결국 한벌이 되었다..

​속옷도둑놈들 입장에선..
오랜만에 보는 A급 속옷이니.. 눈이 돌아갔겠지...



갈아입을 속옷이 없으니..
하루 입고.. 노팬티로 손빨래를 하고..

물기를 짜서..
덜 마른 속옷을 다시 입는 것이 반복되었다...

​내 몸은 물이 스며들지 않는 강철이나 고무...
비닐 같은... 그런 재질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나는 심한 습진에 시달리게 되었고...
일과 후 샤워시간에 가랑이를 심하게 긁으며 몸을 씻는 내 모습에 의해..
나의 습진은 발각되었다..



분과 내에서..
문제가 생기기 전에 수습하려는 움직임으로서..
어쩌다 습진이 걸리게 되었는지 경위조사가 이루어졌고

내가 속옷 하나를 매일 빨아서..
덜 마른 상태에서 다시 입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분과 선임병들은 인상을 쓰며..
'그런 일이 있으면 보고를 해야지' 따위의 말을 했으나..
평소에 너무 많이 혼나고 있어서 또 혼날 것 같았다..

아니.. 혼나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그러한 상황이 누적되면서 나를 점 점 더 병신으로 본다는 것이 무섭다...
멍청하게도...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속옷에 주기도 안 해놨어?'
라고 유일병이 물어보았으나..

나는 당연히 해놓았다...
이름에서 멈추지 않고.. 이 병장님이 지어주신 별명까지 대문짝 만하게 적어놓았다..

'얼마나 그렇게 입고 다녔노?'
연달아서 새로 분대장이 된 심 상병이 물어보았는데..
난 솔직히 잘 모르겠어서 대답하지 못했다..



분과의 선임들은 몹시 답답하다는 듯이..
이구동성으로 나를 갈구었는데...

그러면서도 행정반의 보급계 계원에게 이야기를 해서..
추가로 속옷을 지급받도록 도와주는 츤데레들 이였다...

​보급계 병사인 한별의 이름을 가진 장 일병과의 첫 만남이다...



장 일병은.. 속옷이 모자라면 본인에게 이야기를 해야 주지 않겠느냐며..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를 하며.. 화를 내며 놀라다가..

이 새끼 속옷 더 받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따위의 의심을 하며 특유의 짝눈을 치켜떴다..

.. 이미 분과에서 걸출하게 갈굼을 먹은 나를 또다시 갈구었다

군대란 원래 이런 곳이다...
하나의 잘못을 하면 사방팔방에서 뚜들겨 맞으며 갈굼 받고..
그 말을 들은 같은 부대 사람이.. 분노해서.. 또 갈굼 받고 또다시 갈굼 받는..

계급과 체계가 있으나... 계급과 체계를 밥 말아먹은 곳...



어쨌거나...
장 일병은 툴툴거리면서도..
이번엔 잘 관수해야 한다며 속옷을 지급해 주었다



장 일병.. 하니...
속옷도난 사건이 있은 이후로 며칠이 지나...
일과 후 전투화를 닦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이 이병과 구두를 닦다가.. 뭔가에 홀린 듯이
'이등병 때는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시키는 일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라고 중얼거렸는데...

이 이병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그만하십시오...!'라고 내 말을 끊어버렸다..

이 반응은 무얼까..?
나는 같은 이등병... 한 달 후임에게도 머저리처럼 보인 것일까?
이젠 익숙하다... 나는 그런 놈이야... 그래.. 그런 놈이야...
인정하자..

​전투화를 다 닦고 내무실로 들어온 후.. 걸래를 빨고 돌아오자?
​선임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분과의 선임병중 한 명인 충민의 이름을 가진 황.. 일병이..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너 이등병 때는 닥치고 있어야 한다고 후임에게 교육했다며? 이등병 새끼가 빠져가지고....'
라고 말하는데....

뭐지? 또 어디서 뭐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와전이 된 거지? 아니 그보다 누가 말한 거지? 이 이병? 아니 그럴 리가...? 이 이병은 나랑 같이 구두를 닦고 들어와서 걸래를 빨고 왔잖아....? 그럼 누구지? 아니야 그 틈 사이에 말하려면 말할 수 있으면 한 틈이 있기는 있었어.... 아까 내 말을 잘라낸 것도 그렇고... 이 녀석.... 나를  팔았단 말이야...? 대체 무얼 위해...?

따위의 생각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때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면...
숨 쉬지 말고 위에 빨간 글씨를 쉬지 말고 읽어봐..
그 숨 막힘이 내가 그때 느낀 절망감의 한 6%..? 는 될까?



​나는 모든 분노를 눈에 담아서..
이 이병을 바라보았으나..

이 이병은..
너무나도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뭐지 저 표정은...?
이 이병은 아닌 건가? 아니면 시치미...?

아무튼... 생각해 봐라?
'아' 다르고 '어' 다른 건 한국말에선 아주 잘 구분해야 할 항목이다..

'이등병 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시키는 것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어딜 보면 '이등병 때는 닥치고 있어야 해!!' 와 같은 말인가...?

누가 되었든...
내 말을 전달한 사람은 그런 걸 생각할 줄 모르는 멍청한 놈 이거나...
내가 혼나는 걸 바라고 있는 악당이거나..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때의 난... 아주 당연하게도..
'나는 그런 적이 없다'라고 대답했고..

내 대답을 들은 황 일병은
'증인이 있는데?' 라면서 날 끌고 행정반 앞으로 걸어갔다..



대체 증인이 누구 이길래
행정반씩이나 오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증인으로 나선 것은 다름 아닌 장 일병이다...
부대의 보급계 계원인....

황 일병과 장 일병은 동기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 아니? 왜? 동기사랑 나라사랑! 씨발 새끼들! 개 같은 놈! 씨발놈!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리고 싶다!! 죽여.... 버리다니..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아니야 난 못해... 난 살인자는 아니야.... 그런데 저 새끼는 대체 어디서 내가 닥치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거지? 어디서 어떤 식으로 듣고 와서 헛소문을 퍼트리는 거지? 역시 죽이고 싶다! 그런데 난 못해... 난 살인자가 아니니까.... 아.. 근데 이 상황은 대체 뭘까...?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어...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따위의 생각을..
눈을 광적으로 깜박이면서... 순식간에 하고 있는 나에게..
장 일병이 짝눈을 치켜뜨며 인상을 쓴다

'야~! 내가 다 들었는데-에?!'
라면서.. 특유의 듣기 싫은 트랜스젠더 같은 목소리를 내뱉는다...

​황 일병은 나를 보며 기가 차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넌 이제 좆 됐어라는 표정을 짓더니?

내게 다시 물어본다

​'이래도 니가 안 그랬어?'



나는 당연하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바로 대답했는데...

장 일병이 '야 그럼 내가 거짓말 했다는거냐?' 라고 하면서 짝눈을 치켜뜬다..

이것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 건가?
나는 잠시 너무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얼굴을 옆으로 돌렸는데....
복도 옆으로 보이는 풍경이 낮이 익다...

아아... 그렇다.... 모든 게 연결되었다....

행정반은.... 2층의 복도 한쪽 끝에 위치해 있고.... 복도 끝에는 내려가는 계단이 있지... 장 일병은 뭘 하려 했는지는 몰라도 그때 이 계단 위에 있었던 거야... 내가 이 이병과 전투화를 닦던 위치는 바로 저 아래이겠지.... 이 이병은... 장 일병의 기척을 느끼고 나를 제지한 것일 테지...? 장 일병.. 이 녀석은 계단 위에서 나와 이 이병의 대화를 듣고는.. 뭔가 '재미있는' 표정을 했을지도 몰라... 그리고 동기인 황 일병에게.. 계집애처럼 쪼르르 달려가서.. 선량한 표정을 지으며 일러바친 거야... 거기에 무슨 악의적인 와전이 있었든 없었든.... 장 일병은 자신이 들은 말을... 짜증 나는 자신의 목소리와... 어조와.. 말투로 재구성을 했어....

그렇다... 장 일병 '있었던' 일을 전한 것이다...
그러니까... 전달은 잘못되었지만... 결국 거짓말은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존나게 멍청한 놈이다........

그런데 내가 이걸 나보다 한참 선임병인 이 둘에게..
이해시킬 때까지 말을 할 기회가... 나에게... 과연 주어질까...?
이등병 찌끄래기인 나에게....?

​.... 난 아니라고 봐...
나는 각오를 다졌다..

​오명을 뒤집어쓸지언정... 하극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 결과 어떠한 갈굼이 나에게 오더라도 버티겠다는 치기 어린 각오....

이때는 이게 최선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너무나도 멍청했다...

나는 싹수없는 놈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될지라도..
이때 나의 결백을 끝까지 외쳤어야 했다...

멍청한 두 선임병이 내 앞으로의 군생활을 망치는 걸 막아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고...
몸에서 전투적 감정을 스르륵 지우면서...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며 따지는 장한별에게..
'아닙니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두 선임병은 내 대답을 듣자마자...
눈을 초승달처럼 뜨면서 '넌 이제 군생활 꼬인 거야 새꺄!!!'라고 외쳐대었다..

뭐가 저리도 즐거울까...?
말을 하면서 손가락을 세워서 나를 찔러대었는데..
너무 격한 분노와 무력감에... 아픈 줄도 몰랐다...

나중에 보니 쇄골 아래 근처에 멍이 들어 있었다..

그 이후로 갈굼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누굴 탓하랴? 내가 부족한 탓인걸....

​그 마저도 내 윗 선임...
김 일병과 유 일병이.. 나를 관리하지 못한다며..
이미 1차적으로 갈굼을 먹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명은 나를 추가로 갈구지 않고 넘어갔음을...

​어느 날... 지나가던 길에 들은..
병장들의 흡연잡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너무 죄송하고
미안하고 억울하고 슬프고 괴롭고...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눈앞에 시야가 어두워지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등병 찌끄래기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그렇게 나의 마음은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나 같은 건 쓸 모 없는 놈이야...
나는 왜 태어났을까?..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지금까지의 삶도 즐거움보단 고통이 더 많았어...

태어나서 고통스러웠어...
엄마가 미워...

​김 일병님 유 일병님.. 너무 미안해요...
나 같은 놈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맨날 갈굼이나 받으시고...

그러면서 나에게 화풀이를 하지도 않으셨어...
나 같은 것 때문에.... 나 같은 것 때문에....

나 같은 것도 후임이라고 지켜주려고 하시다가...

​나 같은 것 때문에....
고통을 겪으셨어...........

​따위의 우울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무한히 생성되어 갔다




내가 이렇게..
우울한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받은 갈굼 들은..
그동안 받은 갈굼보다도 몇십 배는 많은 량 으로서..

나는 운동도 없이..
순수 갈굼만으로 30kg 정도의 체중을 감량했다

​대체 내 몸속의 뭐가 30kg이나 사라진 걸까..?
체형은 그대 론데...

내가 이 정도의 갈굼을 받고 있는 걸 보니
내리 갈굼을 즐기는 군대 특성상 김 일병과 유 일병은..
나 때문에 나보다 더 갈굼을 먹고 있겠지...

​엄청난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죽기로 했다



​스마트하고 깔끔하게 각오는 끝냈다
유서 따윈 남기지 않으리라..
​내가 죽으면 모두가 편해질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커터칼을 들고 화장실로 걸어갔다
분과원들에겐 화장실 좀 다녀오겠노라고 덤덤하게 말을 했다

주말이라 TV를 보는데 빠져있던 내무실의 모두는..
TV에서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건성으로
'어 그래' 라고 대답을 하였다..

잘 있어요 모두들... 죄송했어요..
화장실의 좌변기에 앉은 나는 활동복의 팔을 걷어올리고..
커터칼을 한 칸씩 뽑아 올렸다

한 번에 뽑아 올리면 누군가가 알아챌지도 모르기에..
주변 소음에 맞춰서 느릿느릿 한 칸씩..

​그렇게.. 충분한 길이의 칼날이 뽑혀 올라왔고..
나는 손목에 칼을 대고 슥슥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칼날인데..
문지르면 잘리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가죽은 생각보다 질겼다
피는 날 지언정 쉽게 잘리지는 않는 것이다..

나는 힘을 줘서..
칼로 톱질을 하듯이 피부를 눌러 절삭해 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죽음이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커터칼은 목숨을 끊기엔 부족한 흉기인 걸까?

​피는 점점 많이 났지만..
커터칼은 내 피부의 지방질만을 계속해서 긁고 있었다

​이대론 안된다...라고 생각한 나는
한 번에 피부를 관통하기 위해 칼날을 짧게 잡고 꾸욱 눌러 밀어 넣어..
팔에 쑤셔 넣었는데....

머릿속에 띵-한 광기가 소용돌이치며..
그대로 수직으로 내리그으려는 순간...
​화장실 문 틈으로 유 일병이 나타났다..

놀라서 칼을 숨겼다...

그때 그냥 내리그어 버렸어야 했는데....




유 일병은 내가 여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는지?
문 틈으로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보내면서..

' 왜 이렇게 화장실에 오래 있어? 다들 걱정하잖아...'
라고 말 하였다...

​내 자살 시도는 그렇게 발각되었고.. 저지당했다

​아아... 병신 같은 난 죽는 것도 신속히 못한다...
이때를 생각하니 흉터가 쑤셔오는 걸 느낀다....



유 일병은..
이 사건을 분과원들에게만 이야기하였는데..
문제를 크게 벌리지 않으려는 조치인 것 같았다...

​현명하다..

​독하게 먹은.. 죽고자 하는 마음이.. 한번 풀어지자
공포가 올라왔다..

역시 죽는 건 두렵다...
나 같은 애송이가 선택할 방법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죽지도 못한 나는..
이대로 계속 선임들에게 민폐를 끼쳐야 하는 건가...?

나는 더욱더 멍한 표정을 짓게 되고...
동기들과도 말을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후임인 이 이병 에게만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더 많은 갈굼이 나에게 날아들었다..

입대한 후 한 번도 말을 섞어보지 않은 자를 포함한..
전 포대의 선임병이란 선임병은 몽땅 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분노해서... 나를 찾아온다

파렴치하게도.. 계급에 어울리지 않는 헛소리를 했으면서..
그걸 고발한 선임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려고 한 개새끼 인.. 나를..
단죄하기 위해 다들 한 마디씩 갈굼을 선사하는 것이다...

아주 좋은 분노 방출 샌드백이 생긴 것 아닐까...?

나는 일단 하극상을 하지 않기 위해 있지도 않은 죄를 인정하였으나...
그렇다고 죄송하다고 빌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잘못한 게 없으니까

그래서 나를 멱살 잡아 벽에 패대기치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수십 번을 좌르륵 긁어 내리고...
머리통에 싸대기를 날려대며 나를 죽일 듯이 갈궈대도..

​무표정으로 묵묵히 얻어맞으며..
일절 대답 하지 않았다..



​싸움에서 기술적으로 이기고 지는 것과..
상대를 죽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

제깟놈들... 싸움에서 이기진 못해도..
몸 성하게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전 포대의 선임들을.. 불구 장애인 새끼로 만들..
자신감도 의지도..  짜증이 날 정도로 넘쳐나게 있었지만

​여기는 군대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적어도 광인은 아니니까...
그저 얻어맞고 갈굼 당하며... 감내하는 것이다...

언젠가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왜 나를 낳았냐고..
죽을 때까지 싸대기를 날리기 위해...



그렇게 나는 관심병사로 낙인이 찍히고
뭔가 이상한 놈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1. 갈궈도 때려도 반응도 없고 대답도 안 하는 놈
2. 항상 뭔가 생각에 잠겨있는 놈

​따위의 타이틀이 나에게 붙었다..

나는 핀트가 어긋나는 갈굼에 대답을 했다가..
또다시 와전되는 것이 너무나도 싫어서 대답을 하지 않았고

항상 살아서 엄마에게 돌아가 왜 나를 낳았냐며..
죽도록 패는 상상만을 하고 있었다..

이전에 김호준 하사가 나에게 선사했던..
갈굼에 대해 할 말이 없으면 무기력해지는 습관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엄마를 어떻게 죽여...?
그래도 낳아주신 분인데.....?

나의 관심사는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해 고통받게 한 장본인인 엄마를..
어떻게 패면 아프기만 하면서 죽이지는 않을까?

..로 변해 있었다



이런 나의 흑화를 멈추어준 사람은...
기독교 군종병으로서...

​군대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었으며 함께 분노해 줬고
결과적으로 내 마음을 풀어주었다...

​기독교 종교행사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곤 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지칭할 때마다 홀리 보이스(Holy voice)라고 불렀는데...

아마 본인은 끝까지 홀리 보이즈(Holy Boys)라고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부대에는..
계급별로 한 명씩 특이한 비밀직급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밝은 병영 지킴이'이다..

​이게 뭐 하는 거냐면?
각 병사 계급별로 배치된 비-밀 지킴이가

병사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기록하며..
능력이 된다면 그들을 도와주고

​능력이 안 된다면 친하게 지내주며 관찰하다가
지휘관이 지킴이들을 소집했을 때 보고하여..
​잘못된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홀리 보이스님께서 그런 식으로 말해주었으니
적어도 그러한 직급이겠지..

홀리 보이스(Holy voice)님!
그가 바로 이등병 밝은 병영 지킴이였던 것이다...!



홀리 보이스(Holy voice)님 께선 후임자를 찾는중 이였는데...
운이 나빴는지 그 타깃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나였다..

나는 그런 거창한 걸 할 자신이 없다고.. 거절에 거절을 반복했으나..
이미 비밀을 들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하시기에..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호구당한 것 같지만..

진심이었든 직급을 수행한 것이었든...
홀리 보이스(Holy voice)님의 지킴이 활동으로 인해..
나 역시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니..

은혜를 갚는다 여기자...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도 부족한 자이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갈굼의 타겟이다..

이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능력이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으로써..

이등병들의 속옷 분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세탁기 같이 돌려주기..
잠시의 여유를 가지도록 음료수 뽑아주기 및..

표정이 어두운 자의 고민 들어주기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그 상황은..
피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함이다..



나도 이등병 이면서 이등병들 세탁기 돌려주려는 목적으로
집에 전화하여 돈 좀 보내달라고 했다가...

등기로 우편이 와서.. 또 다른 갈굼의 이유가 되었지만... 뭐..

이제 와서 내가 갈굼을 마다하면....
그 누가 갈굼을 받겠는가...?



내가..
이 활동을 개시한 이후로 적어도 이등병들만은
나를 색안경 끼고 보지 않게 되었다...

홀리 보이스(Holy voice)님께..
또다시 구원받았다?

아니 이건 확대해석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