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기억

어릴적 수학학원에 대한 기억 중에서...

주정뱅이 2026. 1. 6. 16:42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즈음이던가?

잠시 그 시절에 몰입해서..
기억을 하나 떠올려보자..



학교에서 퇴근하고..

아니.. 퇴근이라니..?
학교에서 퇴근을 한다니 말이 이상하다..
그런데 대체할 단어가 안 떠오르니 그냥 알아서 이해하도록 해라...

집에서 놀고 있던 나에게
가짜엄마가 누나를 따라서
어디를 같이 갔다 오라고 말을 했다

딱 어디 가는지만 보고 와라 같은
가벼운 느낌의 말투였다..

어디를 가는데?라고 물어보았으나
뭔가 몹시 흡족한 표정으로 '그냥 갔다 와~' 라고..
얼버무렸던 게 떠오른다..

이제 막 집에 돌아와..
혼자 놀기에 열이 붙었던 나는..

밖에 나가기가 귀찮았기 때문에..
솔직하게 '나가기 귀찮다' 라고 말을 했고..

내 말을 듣자마자 가짜엄마의 흡족한 표정은..
혼내는 표정으로 급변 변했다

이제는 뭔지 아는 이 표정 변화는..
대충 얼버무리면 다 잘 되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수틀리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표정인데...

그 출현 빈도가 상당히  높았던..
가짜엄마의 주특기이다..



어린 나는...
혼내는 표정에 겁을 먹으며 생각했다

1. 어디 놀러 갔다 오는 건가?
2. 어른들끼리 뭔가 집에서 할 게 있나 봐!
3. 나 뭐 잘못했나?
4. 누나가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감시를 시키는 건가?
5. 그래도 역시 나가기 귀찮은데...
6.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어

쓸데없이 생각이 많은 초등학생이었구나 나는..

어쨌거나...
부모의 명령에 저항할 능력이 없던 나는

내 생각을 억압당한 채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누나를 따라나섰다

어디 가는 거야? 물어보았으나
누나는 특유의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넌 이제 죽었어' 라고 중얼거렸다..



누나를 따라 도착한 곳은
그 당시 살던 아파트 단지의 상가였다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
요사스럽게 미소 짓고 있는 아줌마가 서있는 미용실을 지나고..
또 계단을 올라가서 3층까지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3층에서 어떤 문을 열고 들어가
나를 방 안에 앉게 했다

내가 방 안에서 아무 의자를 골라서 앉자 누나는..
홀연히 방에서 나가... 골목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
누나를 따라가기 위해 일어나려 했는데..

눈매가 사나운 아줌마가 나를 다시 앉히면서
너는 여기서 잠깐 기다리자?
..라고 하였다..



나는 또다시 생각한다

1. 놀러 가는 게 아니었나?
2. 누나가 어디로 가는지 봤으니..
난 이제 돌아가도 되겠지?
3. 그런데 여긴 뭘 하는 곳이지?
4. 저 아줌마 눈매가 기분 나빠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표정이 죽은 채로 어느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
기괴하게 격앙되어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아이
다른 아이들을 깔보듯이 비웃는 표정의 아이 등등..

수많은 아이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놀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아이들을 무관심한 듯 감시하고 있는 어른들...?
아이들은 이 어른들을 신경 쓰고 있다..?

나는 생각에 결론을 내렸다

5. 여기는.. 악마의 소굴이다!
무얼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용해 수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6. 누나는 악마의 소굴에 홀려있는 것이야!
엄마는 이런 낌새를 눈치채고.. 나를 감시로 붙인 게 분명해!
내가 누나를 구해야 해! 그런데 무슨 수로...?

7. 그렇다! 일단 도망가서 엄마에게 말하자!

나는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최대한 내가 이것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걸 들키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말해야 해...

'저는 이제 가볼게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몸을 일으켜..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똑똑한 나는..
이미 여기까지 오는 길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을 터였다

그럴 터였는데...



내가 일어나려고 하는 것과 동시에...
눈매 사나운 아줌마가 내 어깨를 눌러 다시 앉혔다

위를 올려다보듯이 뒤를 돌아본 내 눈앞에..
몹시 화가 나고 짜증이 났지만 참고 있다는 것이 역력해 숨길 수 없는 표정을 한 아줌마가...
눈과 팔에 힘을 주고.. 나를 내리깔아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낭패다! 악마들에게 들켜버렸어!'
식겁하여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다

안돼!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끝이야!
호랑이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어!

도망가야 해!
누나가 악마의 소굴에 붙잡혀 있다고...
엄마에게 알려야 해!

나는 아줌마를 뿌리치려고 몸부림쳤으나...
위에서 내리누르듯 내 어깨를 잡고 있는 아줌마의..
어른의 힘을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턱수염 남자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집에 가고 싶니?'
낮은 중저음..

그리고.. 뭐든 알고 있다는 염소 같은 눈빛!
저 자다! 저자가 이 악마들의 우두머리이다!
나는 딱 알 수 있었다..

어둠의 존재가 나타났다...!!


' 악마의 질문에 섣불리 대답하면 홀리게 돼!!!!!!!! '

언젠가 전학 간 친구에게 들었던...
모종의 조언이 떠오른 나는..

턱수염 남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계속 몸을 일으키려 몸부림쳤다..

턱수염 남자는..
내 모습을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내가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이번엔 아줌마가 다시 입을 연다...

'그런 걸 왜 물어봐? 얘 도망갈 생각만 가득이야..'

몹시 가소롭다는듯한 아줌마의 말을 듣자..
내 몸은 또다시 식겁해 온다..

이것이 악마가 인간을 굴복시킬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나의 속 마음을 하나씩 들킬 때마다 나의 힘은 약해지고...
악마가 점점 더 강해져..

나의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니 섣불리 목소리를 내서도 질문에 대답해서도 안된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오직 강한 정신과 마음을 가진 자만이..
악마에 대적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냉정한 이성과 달리..
실제로는 이렇게.. 말한다..

크으으으으윽!!! 역시 간파당한 건가?!
악마 녀석들... 악마 녀석들!!!!!!!
크으으으으윽! 이거 놔!
이거 놔아아아아아아!!!
누나를!! 구해야 해..!!!

나의 혼신의 외침을 들은 아줌마는..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요사스럽게 깔깔깔깔 웃어댄다..

나는 그 웃음소리에 정신이 나갈 것처럼 무서운데...
턱수염 남자는 위축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역시 악마들의 대장이라는 건가...?
이제 보니 눈동자가 노란색인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진정하려 애쓰며..
입을 앙 다물고.. 아줌마에게 짓눌린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는 나를..
무표정하게 보고 있던 턱수염 남자는..

한 장의 종이와 연필을 나에게 내밀며 말한다...
'이거 다 풀면 집에 가도 좋아..'

나는 여전히 입을 앙 다문 채로 종이를 응시한다..
종이에는 온갖 수학적인 난제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내 아래로 무수히 많은 1, 2, 3학년 들이 있단 말이다!!!
이런 수학 난제 따위! 금방 풀고 당당히 집으로 돌아가 주겠어!

나는 수학적 난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집에 가야 해!
엄마에게 알려야 해!
누나가 악마의 소굴에 붙잡혀 있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총 10개의 수학적 난제들 중
6개밖에 풀지 못했다...

남은 4개를 풀기 위해..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줌마에게 내리 깔려 있어야 했고....

모르겠으면 포기하라고..
모든 악마의 대장인 턱수염 남자가 유혹해 왔으나...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분명히.. 누나는 여자라서 연약하니까..
편해지라는 유혹에 굴복해서.. 타락하고 말았을 거야..
나는 남자니까 조용히 버티고 감내해 내야 한다...

그리하면 승리의 길이 보이리라.....!!




결국..
나는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남은 4문제는 풀지 못했으며..

나는 악마에게 굴복하여..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기괴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그러하였다...

악마들은..

'내일 다시 오자~'
라면서 음흉하게 웃으며... 나를 풀어주었다..

나는 이미 타락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패배하였다...



그렇게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채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가짜엄마가 이 악마의 소굴로 몸소 찾아왔다...

나를 구하러 온 것인가!?
기다렸다구!



하지만 반전..

알고 보니 가짜엄마는..
처음부터 나를 이곳에 보낼 생각 이였던 것이다..
아마 악마에 홀리게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생각했냐 하면..
가짜엄마의 믿음대로 누나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갑자기 이런 버거운 임무를 맡긴 가짜엄마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오늘 몫의 놀기를 하지 못했다는 박탈감...

그 모든 것을 담아 엄마에게 힘들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터트리자...
가짜엄마는 나를 몹시 꾸짖었기 때문이다...

겨우 이거로 남자애가 눈물을 흘리냐면서...



악마에게 패배한 나는..
이후로 수년간 이 장소에 매일 끌려와..
수학적 난제들에게 고통받으며..
악마의 놀잇감이 되어버렸으며...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보았던..
표정이 죽은 아이와 같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 속셈학원에 다니는동안..
너무나 고통스러워 매일 실금 하였고..

이로 인해..
같은 교실에 있는 피해자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고 괴롭힘 당하며..

축구화로 발로 차이거나..
벌레가 든 컵라면을 억지로 먹게 되거나..
화장실 변기물을 생수 대신 마시게 되는 등의..
괴롭힘을 당했지만...

이 모든 것은..
나를 더욱 타락시키려는..
악마들의 수법임에 분명했다..

나는 감내해야만 했다...



학년이 올라 5학년이 되어서는..
학원 내 괴롭힘은 학교로 까지 전파되어..
같은 교실의 80% 이상 되는 인원이 나를 때리고 인격무시하는 등...

흔히 말하는 왕따를 당했다...

이대로 악마에게 괴롭힘 당하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고까지 생각하였으나...

평범한 초등학생일 뿐인 나에게..
그런 거대한 금기란 실행하기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다....

아아..
왜 나를...
낳으셨나요.......



나이가 들어 다시 이때의 일을 생각하며 정리해 본다...

가짜엄마는... 아마..
공부하는 곳이라고 하면 안 갈게 뻔하니 속여서 보낸 듯하다..

그러나 나는 학원을 다니는 내내..
너무 공부가 하기 싫어서 매일 오줌을 지리며 정신적인 패닉이 온 거지..
동급생들이 오줌싸개라고 놀리면서 때리고 괴롭힌 건 말할 것도 없고..

사실.. 그 당시에는 진짜로..
내가 악마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악마들을 뒤에서 조종한 것이..
가짜엄마라고 믿기 시작했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난 공부를 엄-청 싫어하게 되고..
더욱 멍청해졌지...

가짜엄마가..
적어도 솔직하게 나에게..

학원에 갈래? 라고 물어보고..
내가 응! 이라고 대답해서..

자발적으로 학원에 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닌가?

내 성격이면...
난 무조건 공부는 싫다고 했겠지..